회사에 재미있는 모임 하나가 있다.
사원부터 수석까지 6명이서 다양한 주제를 주고받으며 지식공유 같은걸 한다.
매주 만나서 얘기를 하는데, 이번주 주제는 '잡 크래프팅' 이다.
조직원들이 주도적으로 직무를 재해석하고 각자 나름대로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뜻한다.
직역하면 ‘직무 다듬기’다.
매일경제의 경영칼럼 (www.mk.co.kr/opinion/columnists/view/2019/08/598047/)에 잡크래프팅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큰 조직에 속한 일개 사원으로서 수많은 좌절을 마주하는데,
그때마다 열심히 분노하지만, 사실 텅텅 비어있는 분노다.
그러지 말고 능동적으로 뭔가 해보자는 취지로 모임의 대장께서 이 주제를 던져주셨다.
그래서 내가 하는 일에 의미를 찾아보자 마음을 먹으니, 5년동안 건축과에서 느꼈던 감정들이 떠올랐다.
"여러분, 우리는 도시의 풍경을 만드는 건축가입니다. 얼마나 보람되고 아름다운 일입니까? 건축가는 직업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진.."
나를 포함한 순진무구한 학생들에게 건축의 환상을 심어주었던 교수님들의 얼굴이 스쳐지나가고...

기분이 안좋아졌다.
동그란 안경에 패셔너블한 옷을 입고 멋진 말들을 하시면, 우리는 그 세계를 멋지게 상상한다.
(학교 커리큘럼에 대한 아쉬움이 바로 이 지점이기도 하다. 교수진들의 대부분을 건축가들로 포진했다는 것. 필드에서 건축계획은 작은 한 부분일 뿐이다.)
실제로 현업에서 행복하게 설계하시는 분들도 많다.
그러나 건축설계업에 종사하는 모두가 그렇지는 못하다.
특히 나처럼 대형 설계사무소에 다니고 있다면 상황은 많이 다르다.
개인이 하는 일이 전체에서 아주 작은 일일 수 있고, 계획보다 사업성이 우선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설계의 자유도가 매우 낮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프로젝트 하나를 수주한다 해도,
인허가 과정을 거치면서 '관, 청, 시'자 들어가는 집단들의 제재를 받다보면 대부분 처음의 계획은 희미해진다.
이런 현실속에서 직무의 의미를 찾기가 쉽지는 않아보인다.
솔직히 의미를 찾는다 해도 자기위로에 지나지 않을거라 생각한다.
내가 의미를 만들어 낸다고 해서 그 의미가 진짜 의미 있어지는건 아니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처럼 생각을 정리하고 나면 다듬어지는 것들이 있다.
한바탕 글을 쓰고나니
어떤 분야든 한계는 있고 그 한계를 잘 넘어서는게 우리 모두의 미션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고,
내가 하는 일의 좋은 부분만 말하면서 애써 포장하기보단, 정확한 문제를 즉시하고 해결하는 방향으로 가야한다는 결론이 생긴다.
매우 건강한 방향이다.
내 태도가 다듬어졌다.
삭막한 콘크리트 사이에서도 꽃은 피어난다는데, 비겁하게 주어진 환경을 탓하고 싶진 않아졌다.
내가 바꾸면되지?
치열하게 싸워봐야겠다
뭐랑 싸우는진 모르겠지만
일단 싸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