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교수의 표현법 회사사정으로 뜻밖의 공짜휴가가 이틀이나 생겼다. 2년째 찾아뵙지 못한 교수님 생각이 나서 바로 연락하여 찾아뵙기로 했다. 오랜만에 간 학교에 오랜만에 뵌 교수님은 변한 것 없이 그대로의 모습이셨다. 난 너무 교수님이 반가웠는데, 보자마자 하시는 말씀이 '너 얼굴이 왜이리 못나졌니, 예전엔 그래도 미인상이었는데...' '아니 왜요? 어디가요? 살이 좀 찌긴했어요.. 생기를 좀 잃었나?' '생기는 아직 넘치네' '그럼 제가 나이가 들었나봐요..' '그래, 그건가보다' 훈훈한.. 인삿말 이후로 한시간 정도 이런저런 얘기들을 하며 -나의 근황, 회사, 학교, 부모님 건강, 부동산- 얘기들을 했지만, 머릿속엔 '내가 어디가 못나졌다는걸까'는 생각 뿐이었다. 심지어 오랜만에 교수님을 뵙는거라 평소보다 더 신경을 쓰.. 더보기
반성문 남자친구와 싸웠다. 또 같은 이유다. 마음이 약해져있는 나는 남자친구에게 위로받고 싶다. 그러나 곧이 곧대로 말하지 않는다. 이유들을 대가면서 나는 괜찮은데 상황이 힘든거라고 한다. 돌아오는 남자친구의 대답은 내 마음에 들지않고, 혼자 꼬이기 시작한다. 꼬이고 꼬여서 끝내 꽈배기가 되고서야 남자를 툭툭 건드린다. 툭툭 건드리고 건드려서 결국 남자가 화를 내면 질질 운다. 왜 그렇게 화를 내냐고 한다. 난 그냥 너에게 위로받고 싶었을 뿐인데, 그거 하나 제대로 해주지 못하느냐고 말한다. 그렇게 일주일을 꼬인채로 그러나 아무렇지 않은척 하며 시간을 보낸다. 그러는 동안 남자는 내가 말해주기를 기다리지만, 결국 한주가 흘러 얼굴을 다시 마주하고서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너가 자꾸 화내니까 그런거야! 는 식으.. 더보기
인간이 그리는 무늬, 최진석 '인문'을 풀어말하면'인간의 그리는 무늬'이다.인간이 살아온 동선을 알면 내가 어디로 가야할지 아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우리는 인문학을 공부한다. 이 책의 주제는' 네 맘대로 살고, 네 하고 싶은대로 해라 '이다그래야 세상이 그럴듯하게 돌아갈 것이라고 한다.책의 부분부분 도움되는 통찰이나 생각은 있으나,큰 주제에 대해선 동의할 수 없다. 개인 속에 있는 욕망에 집중해서 그대로 살라는 것은기준 없이 살라는 말과 같다.'자유'의 반댓말은 '구속'이 아니라 '방종'이다. 즉, 무질서다. 인간이 무질서를 만나면 자유를 얻을 것 같지만 실은 파멸할 가능성이 더 많다. 내 속에 욕망이 어디로 향하는지 아는 것도 문제다.우리는 대부분 스스로 뭘 좋아하는지 모른다.그걸 알아내려 작심하고 자신을 들여다 본다 해서갑자기 .. 더보기
미나리 '로마' 이후에 만난 따뜻하고 기분좋은 영화다. 원래가 영화라는 매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옆에 있는 사람덕에 좋은 영화를 볼 기회가 더러 있었다.'로마'도 그 중 한 편이었는데, 흑백 멕시코 도시의 풍경과 감독 개인적인 추억이 담긴 가구들로 꾸며진 집 내부가좋은 장면으로 기억 속에 남았다. 영화는 책과 다르게 눈과 귀를 통해 전해지는 공감각적 매체라,내 기억속에서의 장면 또한 소리와 함께 남는다. # 가족이 처음 집을 마주했을 때 뛰노는 아이들의 모습 # 그 집에서 폭풍을 맞이할때 두려움에 떠는 가족과 비에 젖은 아빠의 대비 # 아들과 아빠가 함께 넓은 땅에서 숲을 바라보는 장면 # 열심히 일하고 집에 돌아올 때 땀에 젖은아빠의 난닝구# 처음 할머니가 집에 왔을 때 엄마의 얼굴# 할머니와 손자가 처.. 더보기
모난 사원 다듬기 회사에 재미있는 모임 하나가 있다. 사원부터 수석까지 6명이서 다양한 주제를 주고받으며 지식공유 같은걸 한다.매주 만나서 얘기를 하는데, 이번주 주제는 '잡 크래프팅' 이다.조직원들이 주도적으로 직무를 재해석하고 각자 나름대로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뜻한다. 직역하면 ‘직무 다듬기’다.매일경제의 경영칼럼 (www.mk.co.kr/opinion/columnists/view/2019/08/598047/)에 잡크래프팅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큰 조직에 속한 일개 사원으로서 수많은 좌절을 마주하는데, 그때마다 열심히 분노하지만, 사실 텅텅 비어있는 분노다.그러지 말고 능동적으로 뭔가 해보자는 취지로 모임의 대장께서 이 주제를 던져주셨다. 그래서 내가 하는 일에 의미를 찾아보자 마음을 먹으니, 5년동안 건축과에서.. 더보기
솔직하고 과격한 조언 본부이동 한번 신청했다가 인생이 피곤해지는 경험을 하고 있다.피곤해지는 이유는 다른게 아니라 '생각과 고민'의 무한 궤도속에 스스로 들어갔다가 반드시 또 빠져나와야 하기 때문이다.예상치 못한 전무님의 활약으로 궤도에 진입하게 되었는데, 가장 큰 원인은 전무님이 솔직하지 못해서이다.진짜 이유는 감춘 채 내 커리어와 미래를 생각한다는 말로 포장하고, 당신이 원하는 결과로 이끌어 가는게 나를 불편하게 했다. 반면, 오늘 만난 최소장님은 과격할정도로 솔직하시다. 그 솔직함 앞에 깔-끔하게 설득당했다.나에 대한 그의 감정과 현재 내 위치, 기획과 컨설팅이 현재 하고 있는 일- 등에 대해서 가감없이 의견을 펼쳐주시니, 경험도 적고 덤빌 짬도 안되는 나로선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해주신 말씀중에 가장 의.. 더보기
문장강화, 이태준 새로운 문장작법우리가 표현하려는 것은 마음이요 생각이요 감정이다. 마음과 생각과 감정에 가까운 것은 글보다 말이다. '글 곧 말' 이라는 글에 입각한 문장관은 구식이다. '말 곧 마음'이라는 말에 입각에 최단거리에서 표현을 계획해야 할 것이다. 과거의 문장작법은 글을 어떻게 다듬을까에 주력해왔다. 그래서 문자는 살되 감정은 죽는 수가 많았다. 이제부터의 문장작법은 글을 죽이더라도 먼저 말을 살리는 데, 감정을 살려놓는데 주력해야 할 것이다. 말은 사회에 속한다. 개인의 것이 아니라 사회의 소유인 단어는 개인적인 것을 표현하기엔 원칙적으로 부적당할 것이다. 감정과 사상을 교환하는 수단으로 문장처럼 편리한 것이 없을 것이니, 개인적인 것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탐구하는 것은 현대 문장연구의 중요한 목표 중.. 더보기
내려다 보는 일 매일 3분씩 내려다보는 곳이 있다. 회사 건물 바로 옆에서 진행되고 있는 공사현장이다.10층에서 5층으로 이사온 후 현장을 더 가까이서 볼 수 있게되었다.화장실에서 창 밑을 내려다 보면 아무 감정이 안든다. '땅을 파네.''안전모를 쓰셨군''포크레인 대박' 나와는 아무 연관없는 풍경을 보다 멍 하니 3분이 금방 지나간다.어느날 평소와 같은 자세로 내려다보다가 문득 차가운 시선으로 내려다보는 나에게 놀란다.내가 저 현장에 발을 딛고 서 있었다면 분명 치열한 삶의 부분이었을텐데,5층 위에서 내려다보니 그냥 공사하는 일꾼과 흙만 보인다. 내려다보는 일은 그래서 무섭다. 나와 상관 없는 일로 내 몸을 땅에서 분리시키기 때문이고, 내 몸과 함께 마음도 분리되어 감정 없이 대상을 보게 만들어버리기에 그렇다. 내가 .. 더보기